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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계획서 쓰다가 책상 뒤집을 뻔한 날

서류 하나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

며칠 전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하는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인가 뭔가 하는 걸 신청해보겠다고 앉아 있었다. 요즘 다들 어디서 뭘 받아서 시작한다길래 나도 뭐라도 좀 해볼까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공고문을 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히 시작했다 싶다. 사업계획서 양식을 다운받아 켜놓고 한 30분 동안 커서만 깜빡이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더라. 글쓰기라면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이건 뭐 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딱딱하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전주 한옥마을 가서 박막례 할머니처럼 그냥 맛집 영상 하나 찍는 게 훨씬 생산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묻는 말은 많은데 왜 대답할 칸은 좁은 건지

사업의 구체적인 목표랑 기대 효과, 수익 구조를 적으라는데 내 머릿속 아이디어들은 아직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다. ‘지역 가치를 활용한 로컬 브랜딩’이라니, 단어는 참 그럴싸한데 막상 이걸 현실적인 매출 수치로 환산하려고 하니 막막하다. 300만 원 정도면 재료비랑 인건비 대충 계산해서 시작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막상 예산 집행 계획 칸을 채우려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주변에 먼저 창업한 친구들은 기보(기술보증기금)니 뭐니 복잡한 용어들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데, 나는 당장 내일 점심 메뉴 고르는 것도 어려운데 법인 사업자 대출을 고민해야 하나 싶어서 한숨만 나왔다. 어디 강의라도 들어볼까 싶어 소상공인 교육 정보를 찾아봤는데, 대면 교육은 시간이 안 맞고 온라인은 너무 지루해 보여서 결국 닫아버렸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도대체 뭐길래

사실 내가 하려는 게 로컬 크리에이터인지 그냥 동네 구멍가게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뭐든 이름 붙이기 나름이라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면 나도 나를 뭔가 그럴싸한 ‘크리에이터’로 포장해야 한다는 게 좀 거북하게 느껴졌다. 제주시에서 장애인 대상 로컬 크리에이터 과정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런 건 진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 같아서 보기 좋았다. 근데 나는 그냥 내 밥벌이 하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서류 한 장에 내 사업의 비전이 다 담길까 싶다. 차라리 발로 뛰어다니면서 현장에서 부딪히는 게 빠르지 않을까. 지금 당장 50만 원만 있어도 샘플 제작 정도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이 수십 페이지짜리 계획서를 완성해야 하나 싶다.

노트북을 닫고 다시 처음부터 고민 중

결국 오늘 작업은 3페이지도 채우지 못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글이 자꾸만 이상하게 꼬인다. 내가 진짜 이 사업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남들이 지원금 받는다니까 괜히 배가 아파서 나도 해보려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돈 100만 원, 200만 원이 사실 큰돈이긴 하지만 이 서류를 준비하는 시간에 다른 알바를 하거나 내 실무를 다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창업 사관학교니 뭐니 하는 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그 복잡한 걸 다 해내는 건지, 나만 유독 머리가 굳어 있는 건지 답답하다.

내일은 다시 할 수 있을까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두워졌다. 오늘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찝찝함 때문에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다음 주까지가 제출 기한인데, 마음 같아서는 그냥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시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아마 내일도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오늘 쓰다 만 문장들을 지웠다 썼다 하겠지. 이게 정말 필요한 과정인 건지, 아니면 그저 내 욕심인 건지 여전히 확신은 없다. 지원금 신청이 통과된다 해도 그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정산 서류와 보고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한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노트북을 켜보긴 하겠지만 글쎄, 기분은 여전히 묘하다.

“사업계획서 쓰다가 책상 뒤집을 뻔한 날”에 대한 3개의 생각

  1. 지역 가치 활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것 같아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사업 계획 단계에서 현실적인 자금 관리를 꼭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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