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금이라는 단어가 왠지 멀게만 느껴질 때
며칠 전 우연히 과수 농가 지원 정책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귀농해서 나무를 심으면 수익이 날 때까지 몇 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는데 갑자기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 사실 귀농은커녕 서울 한복판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나도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며칠도 안 돼서 통장이 텅 비어버리는 게 일상이니까. 정부에서 물가를 잡겠다고 1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농축산물 가격을 낮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런 거창한 수치보다는 당장 다음 달 공과금이랑 관리비가 조금이라도 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복지관 후원 소식을 보며 든 생각
신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취약계층 아홉 가구에 연 1,370만 원을 결연 후원한다는 글을 봤다. 계산해 보니 가구당 한 달에 10만 원 남짓 지원받는 셈이다. 이 돈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생명줄 같은 의미라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걸로 과연 충분할까 하는 씁쓸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10만 원이면 마트 가서 장 한 번 봐도 요즘은 금방 5만 원이 나가는데, 이걸로 한 달 생활비를 보태는 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아껴 쓰시는 걸까. 가끔 오늘의 운세를 보면 ‘안 쓰는 멤버십 해지하고 생활비를 야무지게 쪼개라’는 조언이 나오는데, 그런 당연한 말들이 때로는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미 쪼갤 대로 쪼개서 더 이상 쪼갤 것도 없는데 말이다.
학비와 생활비 그 뒤에 남은 것들
뉴스를 넘기다 보면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노후 자금을 다 쓰고도 결국 가족 간의 불화로 이어졌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아파트 담보까지 대출받아 아들 결혼 자금을 보태줬다는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더라. 자식들 학비 대고 생활비 대느라 정작 당신들 삶은 돌보지 못한 우리네 부모님 세대들. 나도 가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날이면, 이게 효도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버는 돈의 일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2년 넘게 묵혀뒀던 적금 통장을 정리했다. 1년에 2% 정도의 이자가 붙는 게 고작이었지만, 막상 해지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더라. 이걸로 뭘 더 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내 돈이 묶여있다는 안도감이 사라진 것 같아서.
매일 반복되는 생활비 계산의 피로감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우유랑 달걀 가격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달걀 한 판에 5,000원 대면 샀던 것 같은데 이제는 7,000원 근처를 왔다 갔다 한다. 몇백 원 차이가 무슨 큰 대수냐고 하겠지만, 매일 장을 보는 사람에게는 이게 쌓이면 한 달 생활비에 큰 구멍이 된다.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돈을 계산하며 살아야 하나 싶어 현타가 온다. 누군가 써온 제안서의 구멍을 메우는 것처럼, 나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여기저기 분배하며 내 삶의 구멍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결국 결론은 없는 고민들
주변에서는 재테크를 해야 한다,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생활비 자체가 쪼들리는 상황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얼마 전에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생활비가 부족해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의 글을 몇 개 읽어보았다. 무면허 사고로 구상권을 청구당해 막막하다는 글에 달린 댓글에서, 해피빈으로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몇 십억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당장의 10만 원을 고민하는 세상. 나도 저들 중 하나일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내일 마트 가서 우유 가격이 또 올랐을까 봐 걱정하는 게 전부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저도 그래요. 우유 가격 오르면서 갑자기 계산하는 게 많아지니까 숨 막히는 느낌이랄까.